정신치료의 역사,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정신치료의 역사,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정신치료의 역사,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정신치료의 역사,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인류 역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과학적이면서 인본적인 이해와 치료적 접근은 20세기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원시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병에 대해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술적인 방법으로 숭배하는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의식을 치렀죠. 이때 신과의 영적인 소통을 위한 중재자는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주술가였습니다. 이 사람의 역할을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의 심리치료사이자 예술심리치료사 아닐까요? 이러한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인 관점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전통은 아직까지 많은 지역에 남아있고 실제로 여전히 그 의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적 접근의 변화

서양사에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적 접근의 변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서양사를 기준으로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를 보면 비교적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관이 나타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입니다.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정신병을 신경계의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약 2500여 년 전 이미 정신병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 했던 것이죠. 과학이 아닌 인문학적 관점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죠. 소크라테스는 '몸의 병은 의사에게 마음의 병은 철학자에게'라는 말로 오늘날로 치면 심리치료사 또는 상담자의 역할이 철학자에게 있었다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당시 심리학이란 학문이 나타나기 전으로 철학은 삶의 문제, 의문 등을 해결하는 데 스스로 깨닫고 통찰을 얻게 하는 치료적 학문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인 의학자와 철학자의 마음의 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가 과학적이면서도 인본적이라는 점에서 오늘날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참 놀랍죠?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이면서 인간 중심적인 마음의 병에 대한 접근은 중세시대에 오면서 모든 것을 신 중심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종교적 사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중세시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신이 만들어 놓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감사할 줄 모르는 불경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멜랑콜리아라는 우을 증상을 '나태' '무관심'을 의미하는 '앗 세디아'라고 지칭하면서 병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벌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보았죠. 당시 가장 최고층 지위를 갖고 있던 사제들의 우울증 치료에 육체노동을 시키는 노역을 벌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약 천년의 중세시대가 끝나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마음에 병에 대한 관점과 이해도 인간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우울증, 멜랑콜리에 대한 사람들의 묘한 선망이죠. 르네상스를 거처 바로크 시대에 오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을 발견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멜랑콜리였습니다. 그리고 곧 멜랑콜리를 천재성의 상징으로 보는 묘한 기운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처럼 대단위 조사연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은연중에 우울이라는 에너지가 천재성을 발휘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에게 멜랑콜리하다는 것은 칭찬이었던 것이죠. 중세와는 대조적인 시각입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온 이후에도 마음의 병, 정신병의 치료는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실 더 끔찍한 건 신본주의에서 벗어나 과학적 사관이 나타나면서 정신병을 외과적 수술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정신병의 치료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고문 수준의 치료였습니다. 우리 몸 어딘가에 종양이 생겼을 때 수술로 제거하면 병이 낫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병도 신체의 일부에 있다고 믿었던 의학자, 과학자들은 서슴없이 전기충격, 물고문 등 마음을 작용하는 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다양한 방법의 실험을 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포르투갈의 모니즈 박사의 전두엽 절제술이었습니다. 사실 말이 전두엽 절제술이지 실제 그 수술은 눈을 통해 긴 꼬챙이를 전두엽에 삽입해 마구 휘저어서 전두엽을 파괴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이 수술을 받은 후 많은 환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심각한 증상이 사라져 병이 나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니즈 박사는 1949년 전두엽 절 제술로 노벨 의학상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 이 수술은 1950년에서 1970년까지 시행되죠. 그러나 이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인 무력, 자신의 성격과 취향이 없는 영혼 없는 사람 같은 행동 등 정신병 증상과 함께 그 사람의 고유한 성격과 감정도 사라진다는 것이 발견되죠. 전두엽의 기능이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제어하는 부분인데 이곳을 제거해버림으로 병리 증상은 사라졌어도 동시에 사회적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하는 폐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전두엽 절제술은 1970년대 이후 금지됩니다. 이 사건은 불과 50여 년 전까지도 우리는 사람의 정신, 마음에 대하여 이렇게 무지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으로 예입니다. 인간을 컴퓨터와 같은 단순한 기계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환원적인 과학관을 가진 의사들은 마음의 병을 몸에서 치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성에 대한 숙고 없이 마음이 뇌의 작용이라는 단순한 논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몸의 치료와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19세기 프로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유럽 서양사에서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적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인간의 의식이자 신의 영역이었죠. 그래서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신에게 저주받아 영이 망가진 사람, 또는 마귀, 마녀로 취급했던 것이지요.

마음을 뇌의 작용으로만 보는 프로이트

이후 과학은 마음을 뇌의 작용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다시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그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사람이 프로이트였습니다. 근대 이후 과학적 사관이 서구 유럽에 팽배해지면서 인간의 마음은 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닌 몸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정신 용어를 발표하면서 마음의 병의 치료에 몸과 마음 모두 돌봐야 한다는 체화된 마음 개념이 정신치료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수술과 약물 같은 몸에 가하는 일방적인 방법으로 마음의 병을 다루는 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죠. 마음의 병은 몸에도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약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몸의 증상을 제거 해줍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심리적 접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따로 떼어 놓아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죠. 20세기 들어 심리학과 심리치료는 두 번의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되죠. 그 첫 번째 세력으로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두 번째 세력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인데요. 이후 제3세력, 제4세력들이 나타나고 이들의 기본이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심리학과 심리치료 이론과 방법이 발전하게 됩니다. 현재까지 심리학에서 등장한 심리치료 이론은 2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이것은 한편으론 심리치료의 다양성을 말해 주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어떤 명확한 심리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심리치료의 이론과 기법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른 이론과 치료방법이 나오는 방식으로 수많은 이론과 방법이 나온 것이니까요. 그중 언어중심의 심리치료의 가장 큰 한계점은 언어가 인간의 마음을 담기에는 언어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 정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또 다른 매체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것이 예술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들어 음악치료의 경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 미술, 문학, 무용, 드라마 등 예술치료, 표현예술치료, 예술심리치료라고 일컫는 다양한 치료들이 등장합니다. 신중심의 주술적 치료에서 인간의 마음을 너무나 단순한 몸의 작용으로만 보았던 환원주의에서 드디어 인간을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치료의 체화된 마음이론이 나타나고 심리치료의 한계를 넘기 위해 예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언뜻 보면 서양 역사에서 정신치료에 음악이 나타나기까지 중세 천 년을 뺀다면 철학에서 파생된 심리학, 심리학에서 파생된 심리치료, 그리고 심리치료에서 파생된 예술심리치료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정신치료에서 음악의 사용은 인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행위였습니다. 그 시작 그리고 여전히 행해지는 샤먼 의식에서의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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