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과 나쁜음악으로 나누었던 고대 역사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으로 나누었던 고대 역사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으로 나누었던 고대 역사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으로 나누었던 고대 역사

원시시대 음악은 음악과 춤을 합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음악의 리듬은 곧 춤이었고 춤은 곧 음악이 있어야만 가능했기 때문이죠. 음악은 집단에서 함께하는 어우러짐의 행사로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고양하는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원시시대의 음악을 정의하자면 하나 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원시시대의 음악과 춤의 하나 됨, 집단의 하나 됨에서 점차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음악에 구분과 구별이 나타납니다. 연주자와 감상자의 구분,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구별이 그것입니다. 지역에 따른 고유한 문화가 자리 잡고 법과 같은 사회규범이 확립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뚜렷한 사회계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잘 다스리고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모든 예술, 특히 음악에 윤리적 잣대를 적용합니다. 이것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구별의 시작입니다. 이번 주차에는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서도 있었던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구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대와 문화에 따른 종교, 정치, 과학적 사관의 관점과 그 변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좋은 음악' 여러분은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학생들에게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냐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추상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음악이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음악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때 제가 다시 묻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음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적 특징을 가진 음악인지 그리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왜 좋은지 물어보면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좋은 음악을 말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을 답한 거니까요.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선호는 유동적이어서 개인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반면 좋다는 윤리적 판단은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고정되고 지속적인 것입니다. 어떤 상태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겠죠. 비교하자면 내가 길에 쓰러진 노인을 본다면 나는 당연히 다가가 노인의 상태를 살피고 신고하여 빨리 병원으로 가시게 도와 드려야겠죠. 나의 상황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나의 상태가 아무리 아파도 나는 윤리적으로 길에 쓰러진 노인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됩니다. 근데 우리의 애국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여러분은 애국가가 항상 좋은 음악으로 느껴지세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 선수를 위해 울리는 애국가는 왠지 뭉클하고 벅찬 감동을 주는 좋은 음악이지만, 지루하고 형식적인 행사에서 울리는 애국가는 감동보다는 가끔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죠. 이처럼 음악은 좋고 나쁨의 판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좋고 나쁨의 감정이 유동적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좋고 나쁨이라는 윤리적 판단이 종교, 정치와 같은 법규에서는 명확하지만 음악과 같은 예술은 모호합니다. 그런데 문명사회에 들어서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고 지배층이 추구하는 가치를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수용하게 하기 위해 음악에도 좋고 나쁨이라는 윤리적 잣대를 적용합니다. 제가 너무 부정적인 톤으로만 이야기했나요. 그럼 좀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음악의 권장을 통해 국민의 정서함양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개입된 것이죠. 플라톤 ,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철학자들은 좋은 음악이 훌륭한 인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었을까요?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좋은 음악은 오늘날도 유효할까요?

피타고라스의 좋은 음악

먼저 수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좋은 음악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면서 오늘날 서양 음계 체계의 기초를 만든 위대한 음악 이론가였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수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해석하고 그 본질을 규명하려 했죠. 당연히 음악도 그랬습니다. 그는 천체에서 별들이 일정한 비율의 거리를 두고 질서 있게 움직일 때 소리를 내는데 이것을 천체 음악 “music of sphere”라고 지칭했습니다. 다만 인간의 청력으로 들을 수 없을 뿐이라고 믿었죠. 그리고 우주의 조화롭고 질서 있는 움직임을 반영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이런 음악을 통해서만 인간의 영이 맑아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즉 우주 천체의 움직임과 음악에서 음들의 움직임을 동일시한 거죠. 피타고라스가 천제의 움직임과 인간의 영을 맑게 하는 음악을 동일시한 이유는 그가 유신론자였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우주는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세상이기에 그것을 모방한 음악이 완벽하게 좋은 음악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피타고라스의 영원이 맑아지는 좋은 음악은 어떤 음악이었을까요? 그 팁은 오늘날 서양 음계 체계의 기초를 다진 피타고라스 음계에 있습니다. 여기 기타의 현을 예로 보시면 현의 길이 전체를 1로 보았을 때 그 한가운데 그러니까 1의 2분의 1 지점을 누를 경우 옥타브 소리가 납니다. 솔 G 음이 들리시죠. 이제 이 현의 1/2 지점 정 가운데를 눌러보겠습니다. 아까 솔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가 납니다. 이 비율을 1:2로 표시하죠. 다시 전체 현의 길이의 3분에 2에 해당하는 지점을 누르고 소리를 내보겠습니다. 솔 보다 완전 5도 높은 D 레 음이 납니다. 2:3의 비율이죠. 이런 식으로 현의 길이를 계속 비율에 따라 분할할 경우 다음과 같은 음계가 나타납니다. 여기 악보의 번호는 거리의 비율입니다. 여기서 피타고라스는 기준음을 가장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리고 기준에서 멀리 떨어진 음일수록 좋지 않은 소리로 생각했습니다. 기준음은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준음과 수학적으로 조화롭게 가까이 있는 음 들일수록 좋은 영을 만드는 음악의 요소로 생각했던 거죠. 여기 보시는 피타고라스 음계를 통해 유추해 볼 때 피타고라스는 완벽한 협화음만을 사용한 것을 좋은 음악으로 여긴 것입니다. 불협화음과 질서 없는 음악은 기준음, 즉 신과 멀어진 나쁜 음악인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협화음을 좋은 음악으로 여겼다는 것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미 음악이 인간의 정신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음악의 영향력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사회적으로 좋은 음악은 권장하고 나쁜 음악은 규제하는 예술에 대한 지배층의 심의로 나타납니다. 그 최초의 음악 심의의 주역이 바로 플라톤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아마 절대 이성주의, 이상 국가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이성주의, 이상 국가 건설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충분히 플라톤이 감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좋은 음악이란 어떤 음악이었을까요?

플라톤의 좋은 음악

피타고라스가 수학적 비율, 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 좋은 음악에 대해 정의했다면 플라톤은 통치를 위해 좋은 음악을 정의했습니다. 이상 국가를 위해 국민을 잘 통치하기 위한 플라톤의 좋은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플라톤은 이상 국가 건설의 실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고, 교육은 도덕성이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기본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에게 음악은 미적 체험이기보다는 도덕성을 높이는 교육 수단으로써의 중요한 가치를 갖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 윤리적 음악을 적극 권장했는데요. 플라톤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여 들을 수는 없지만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부드러움, 나태, 한탄, 슬픔을 조장하는 음악은 이상 국가 건설에 피해야 할 음악으로, 절제와 용기를 고무시키는 음악은 좋은 음악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음악으로 대비해서 분석해 보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활용되었던 건전가요나 군가와 같은 음악은 좋은 음악이고 감성적인 사랑이나 사회에 저항하는 음악은 나쁜 음악이었던 것이지요. 이제는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가수들이 음반을 낼 때 음반에 반드시 건전가요 하나씩 끼워서 냈어야만 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가수의 절절한 사랑노래가 끝난 후 갑자기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나오면 음반의 마지막이구나 라는 인식과 동시에 좀 전의 감상적인 느낌에 찬물을 확 끼얹는 듯한 감정의 확 맥이 끊기는 느낌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국가에서 어떤 의도로 이러한 정책을 만들었는지는 아마 플라톤에서 찾으면 간단하겠지요. 나라사랑, 근면, 성실, 협동, 통일 등과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세뇌시키는 데 음악만큼 유용한 매개도 없었으니까요. 2차 대전 시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독일인들을 하나로 융합하게 하기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모든 행사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음악과 세속 음악을 철저히 구분하여 종교음악은 수용하였지만 세속 음악은 위험한 음악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정치와 종교에서 좋은 음악은 철저하게 체제를 선전하고 유지하기 위한 선동의 음악 propaganda였던 거죠. 그 이유는 음악이 가지는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음악은 집단을 응집하게 하는 사회적 기능을 합니다. 모든 집단은 항상 집단을 대표하는 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국가, 교가, 사가, 등등. 그리고 데모 같이 집단의 주장을 내세우는 모임에서 사람들은 항상 노래와 함께 합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심리적으로 같은 편이라고 인식하고 경계를 낮춥니다. 그리고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을 통해 전달되는 가사의 내용은 개인의 신념, 태도, 행동을 무의식 중에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 '새마을 노래'는 국가의 경제부흥을 위해 모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보내는 것이었죠.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